[군산] 사자암, 구시물·굇물

안덕면 2009. 5. 14. 10:38 Posted by jeju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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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바위의 형태가 누워있는 사자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군산은 예래동의 설촌과 연관된 곳이기도 하다. "한 고승이 지나가다 해뜨는 동녘바다에 우뚝 솟은 섬(범섬)이 범형상이어서 마을의 재앙을 가져오기 때문에 예래 마을 서쪽에 있는 군산을 사자로 칭하여 사자가 온다는 뜻에서 예래라고 지어주어 평온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이 바위에 대하여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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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SS852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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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유일한 숫오름(남자형) 산인 군산의 산중턱에서 흘러 나오는 이곳 약수는 구시물 또는 굇물이라 불리어지고 있으며 아무리 날이 가물어도 마르지 않아 옛날부터 기우제를 지낼때 이물로 제를 지내면 비가 내리고, 남자형의 숫오름에서 나오는 물이라 하여 아들을 소원하는 이에게 이 물로 소원을 빌면 효험이 있었다고 하며, 불치의 피부병도 이 물로 목욕을 하면 깨끗이 나았다는 전설이 내리오고 있다.

[동영상] SS85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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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전 정으로 쪼아서 만든 길
 

박수기정 밑으로 보이는 용왕난드르(안덕면 대평리) 마을, 쪼슨다리는 말이 좋아 다리지 거의 수직에 가까은 벼랑을 사람 하나 다닐 수 있게 만든 절벽 길이다. 교통이 좋지 않았던 예전에는 화순과 대평 간에 훌륭한 지름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 되지만, 지금은 거의 사용 되지 않는다고 한다.

 

쪼슨다리 입구의 소나무 밭

 

[월라봉] 쪼슨다리(좃은다리)와 용왕난드르(대평리) 마을 -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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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산
 

산방산쪽 봉우리에서 보는 서귀포쪽 봉우리와 앞바다

 

건설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국가기준점 삼각점

 

 

산방산쪽 봉우리와 앞바다

 

동영상 - 바다 방면으로 내려오는 길

 

일본 강점기 진지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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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산방산쪽 봉우리에서 보는 주변의 모습 동영상 64~66

 

일본 강점기 진지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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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주변의 모습 57~63

안덕면 2008. 5. 11. 18:21 Posted by jejulife

동영상

 

산방산 방향

 

 남쪽바다 방향(필자 등 뒤로는 일주도로 변)


 

 

 

군산 입구인 서귀-창천 간 일주도로 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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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정상(서귀포쪽 봉우리)에서 보는 주변의 모습 동영상 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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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45

안덕면 2008. 5. 11. 17:53 Posted by jejulife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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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군메, 군뫼, 굴뫼오름 애기업게돌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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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군메, 군뫼, 굴뫼오름 23~29

안덕면 2008. 3. 14. 11:59 Posted by jeju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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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 564번지 일대
표   고 : 334.5m
비   고 : 280m
둘   레 : 8,111m
면   적 : 2,836,857㎡
저   경 : 2,795m

  안덕면 창천리 앞 창고천 건너에 동서로 길게 가로누운 형태이며, 남사면의 난드르(대평리)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오름이다. 대평리(서난드르)에서 감산리 안덕계곡을 잇는 도로가 군산 서쪽사면의 급경사를 가로지르며 구불구불 이어져 있으며, 이 도로로 부터 군산 남사면의 퇴적층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있다.
  오름 정상을 중심으로 동반부는 서귀포시, 서반부는 남제주군에 속하여 시군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서쪽의 월라봉(도래오름, 月羅峰)과 이웃해 있다.
  정상부의 용의 머리에 쌍봉이 솟았다고 하는 두 개의 뿔바위, 동남사면의 애기업게 돌 등의 퇴적층의 차별침식에 의한 기암괴석, 남사면 계곡에 발달된 웅장한 퇴적층의 수평층리 등 군산은 감춰져 있는 제주도 최대의 화산쇄설성 퇴적층으로 이루어진 기생화산체이다.
  유사시대의 분출기록인 1007년(목종10년)의 기록에 새로이 만들어졌다는 서산(瑞山)이 지금의 군산인 것으로 여러학자들에 의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규모의 퇴적층이 화산분출에 의해서 일시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지질학적인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으며, 혹시 화산체 상에서 지진을 동반한 후화산 활동은 어느곳에서나 가능한 것이므로 이러한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제주화산도상에 분포하는 기생화산체의 신구 구분과 원형보존 여부의 고찰에 의해서 본 오름보다는 송악산지역이나 비양도지역에서가 후화산의 여운과 그에 동반된 지진활동 가능성이 더 농후한 것으로 판단된다.

※  군메(굴뫼)의 어원 분석
 ㆍ'군뫼>군메'의 '군'은 군식구, 군서방, 군말 따위의 '가외의' 또는 '쓸데없는'의 뜻을 가진 관형사 '군~'이 '뫼>메'(산)에 매겨져 있어, 나중에야 갑자기 솟아난 산, 즉 덧생긴 산, 가외로 생겨난 산이라는 뜻이로, '군~'은 '굴룬~'으로도 쓰이고 '가외로'의 뜻일때는 '굴루로'라고 쓰이므로 군산, 굴룬산 또는 굴루로 생겨난 산, 즉 군메이고, 굴메는 '굴룬뫼>굴룬메'의 변화로 볼 수 있다고 한다.
 ㆍ '군메'의 '메'는 '모리>모이>뫼>메'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제주 방언의 특징인 전설모음화 경향에 의하여 된것이라 한다.

* 오름에 얽힌 전설
  옛날에는 지금과 같은 마을(안덕면 창천리)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겨우 10여호가 사고 있을 정도였다. 그 중에 강(姜)씨 선생이 있었다. 그는 글을 많이 읽어 주변에서는 학식있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더구나 인품이 훌륭하여 강선생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으러 모여 들었다.
  하루는 제자들을 둘러 앉히고 글을 읽는데, 문밖에서도 글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은 이상히 생각하여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았다. 방안에서, '하늘천'하면, 바로 이어 문밖에서 따라 '하늘천' 하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다고 여기고는 밖을 살펴보았지마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별로 흉측스러운 일이 아니라 그냥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삼년쯤 계속되던 어느날 이었다.
  하루는 선생이 글 읽는 사람들을 돌려 보내고는 잠자리에 들었을 때였다. 아마 거의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선생님 주무십니까?"
  선생은 꿈속인 듯 생시인 듯 어렴풋이 그 소리를 들었다.
  "누구시오"
  "예, 저는 저 멀리서 온 동해 용왕의 아들인데, 그 동안 선생님의 허락도 받지않고 선생님 밑에서 3년간 글을 읽었습니다. 이제 기한이 다 차서 선생님을 하직하여야 할 처지가 되어 이렇게 작별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 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아주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강선생은 모든게 모르는 일이었으나, 문득 그 동안 댓돌 아래에서 들리던 그 글읽던 소리를 생각해내고는 그가 바로 이 용왕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제 돌아가야 할 처지가 되어 그 동안 선생님께 입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사오니, 뭐라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아뢰어 주십시오. 제가 어떻게 해 보겠습니다."
  용왕 아들이라는 자의 청이 간절했지마는 사실 욕심과 세상 부귀영화에 관심이 없던 그에게는 뭐라고 부탁을 드릴 만한게 없었다.
  "나야 뭐 젊은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게 유일한 즐거움이고, 내 생활은 모두 그네들이 도와주니 내겐 불편하다거나 필요한게 없어요. 헌데 저 냇물이 요란하여 글 읽는데 조금 시끄러운것 밖에는..."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사실 그 동네 앞을 흐르는 그 창고내가 비라도 크게 내리는 날이면 냇물 소리가 크게 들려 아이들과 글 읽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그 일이 결코 선생에게 꼭 소원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용왕의 아들은 그것을 마음에 두었다.
  "선생님 그 일 정도는 어떻게 해결되도록 하지요."
  이렇게 대답을 하고는 "제가 돌아간 후에 며칠이 있으면 큰비와 바람이 며칠간 내리칠 것이오니 아무 걱정 마시고 그저 방문만 꼭 걸어 잠그고 지내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문을 열어서는 안됩니다.그러다가 이레되는 날에는 문을 여십시요."
  이렇게 신신당부하고 그는 떠났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떠나고 얼마 없어서 뇌성벽력이 치고 폭우가 내리치기 시작하였다. 선생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두문불출 며칠을 지내었다.
  그렇게 지내기 칠일이 되는 날이었다. 밖에 비바라도 좀 잔잔해지는 것 같았다. 선생은 이제는 별일이 없으려니 하고 문틈으로 밖을 살며시 내다봤다. 그 순간이었다. 이상한 빛이 번쩍하니 방안으로 드리치더니 그만 선생이 아찔하고 쓰러져 버렸다.
  뒷날 깨어보니 선생은 아무래도 왼쪽 눈이 이상하게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보니 이상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전에는 없던 산이 떡 버티어 서 있었다. 그리고 세상은 언제 풍우가 몰아쳤느냐는 듯이 맑게 개어 있었다.
  이 때 고려 조정에서는 제주도에 천재지변이 일어났다고 하여 관원이 그 진상을 살피러 내려왔다. 관원은 이 새로 생긴 산을 보고는 그 연유를 알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산이 중국 곤륜산이 이곳으로 옮아왔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중국에 있는 서산이 옮겨온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서산이라 부르다가, 그 모양이 군막과 같다고 하여 군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그 산은 어느날 갑자기 생겨났다고 하여 (굴르로 생겨 났다고 하여) 군뫼(군메) 또는 군뫼오름이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또한 이 군산 봉우리에는 옛부터 금장지(禁葬地)로 전해왔다. 바로 쌍선망월형(雙仙望月型)이라 해서 너무나 명당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묘를 쓰면 큰 가뭄이 계속되거나 큰 장마가 계속되어 흉년이 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도 갑자기 가물기 시작하여 농사가 결단날 지경에 이른 적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필시 이는 누가 금장터에 묘를 썼다고 그곳으로 몰려 갔다. 그래서 그 산꼭대기를 아무리 파헤쳐 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계속 그 주위를 파헤쳐 버리자 갑자기 하늘에 비구름이 몰려 오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가뭄을 면할 수 있었다.

제주도(1997.12.20), 제주의 오름, pp. 435~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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