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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마의 본향 의귀

제주목장 2008. 12. 1. 21:36 Posted by jeju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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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귀리의 4·3

의귀리는 마을 남쪽에 넋이오름이 아담하게 솟아있으며, 오름과 마을을 끼고 서중천이 유유히 돌아가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일제시대에는 면소재지였을 정도로 남원면의 중심 마을이었다.

그러나 4·3 당시 의귀리도 제주도의 어느 중산간 마을과 마찬가지로 토벌대에 의해 불에 탄 역사의 생채기를 간직한 마을이다.

4·3 당시 의귀초등학교는 2연대 1대대 2중대 군인들이 주둔하여 남원의 중산간 마을인 의귀리, 한남리, 수망리 주민들을 토벌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토벌대는 매일 주변 수색에 나서 숲이나 궤(작은 천연동굴)에 숨어 있던 주민들을 찾아내 총살하거나 학교 건물에 수용하여 고문과 구타를 일삼았다. 1949년 1월 10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집단학살이 벌어졌고 이들의 유해는 현재 현의합장묘에 안장됐다. 4·3 당시 250여명의 주민이 희생된 의귀리는 1949년부터 재건되기 시작하였으나 동산가름과 웃물통, 장구못 마을은 끝내 못구되지 못했다.

의귀리에는 이외에도 무장대원들의 무덤인 송령이골과, 주민학살터 였던 높은모루 등이 있어 4·3의 아픔을 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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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마의 본향 - 의귀

말(馬)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통·농경·군사·외교 등에 긴요하게 쓰이는 신성한 동물이다. 특히 제주도는 말 사육의 전통을 지니고 있어서 예로부터 '말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탐라국시대부터 활발했던 말 사육은 고려 충렬왕 2년 (1276) 원(元)의 목마장 설치 이후 더욱 확대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10개소의 국마(國馬)목장이 운영되면서 제주도가 최고의 목장지로 각광받았다.
16세기 말 한라산 동남부 일대의 사마(私馬)목장(뒷날'산마장'이 되었음)은 전국 여느 국마목장보다도 번성하였는데, 이는 목장을 설치·경영한 우리 마을 김만일(金萬鎰, 1550~1632)의 공이다. 그는 탁월한 목축 능력으로 의귀(衣貴)에서 교래(橋來)까지 이어지는 광대한 목장에서 1만여 필의 말을 키우면서 국가가 필요할 때마다 헌마하였다. 선조 27년(1594), 선조 33년(1600), 광해군 12년(1620), 인조 5년(1627)에 1300필이 넘는 말을 바친 그는 인조 6년(1628) 종1품(오늘날의 부총리급, 조선시대 제주인으로서 가장 높은 벼슬)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제수되어 헌마공신(獻馬功臣)으로 길이길이 칭송되고 있다. 마을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218년 동안 산마감목관(山馬監牧官)을 역임하여 말 사육에 진력함으로써 제주마육성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의귀리는 이처럼 말 사육을 통한 나라 사랑과 사회적 성취를 이룬 마을이요, 전국 목장 가운데서도 가장 번창하였던 산마장의 중심 마을로, 제주마의 당당한 본향(本鄕)이다. 이에 우리들의 자긍심을 드높이고, 마을의 전통을 계승하여 미래를 개척하는 살기 좋은 고장으로 가꾸기 위하여 우리 모두의 뜻을 모아 이 표석을 세운다.

2008년 4월 25일
의귀리민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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