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사와 4·3유적

한라산/관음사코스 2008. 12. 11. 14:38 Posted by jejulife
제 15회 역사교실
제주 역사와 오름
일시 : 2008년 11월 15일~12월 6일
주최 : (사)제주4·3연구소 · (사)제주역사문화진흥원

2008-12-06 4회
오름과 4·3
오승국(4·3연구소 상임이사)

기행코스 : 오림반(부장대 훈련장)-물오름(경찰주둔지)-이승이악(주민대피처)
실제코스 : 관음사 4·3유적-점심

  금요일날 부터 시작된 한파가 제주도에 첫눈을 선물 하는가 싶더니, 급기야 6일(토요일)까지 제주를 꽁꽁 얼어붙게 했습니다. 갑자기 조정된 일정에 따라 제주시내에서 가까운 4·3유적이 있는 관음사로 코스가 변경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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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관음사 안내

  제주도에 불교가 최초로 전래된 시기는 한반도에 귀속되기 전인 탐라국 시대이고 불교 유입경로는 본토의 북방불교와 달리 해로를 통하여 남방불교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관음사는 불교전래 초기에 창건되어 발전했을 것으로 추측하는 바, 그 근거는 제주의 여러 가지 신화, 전설, 민담에 관음사를 괴남절(제주 방언으로 관음사), 개남절, 동괴남절, 은중절이라고 민간에 유포되어 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구전에는 관음사가 고려 문종 년간에(1046~1083) 창건되었다고 전해왔다. 동국여지승람이나 탐라지에는 관음사가 조천 포구 위에 있었다고 기록되었 있다.
  조선 숙종임금 때인 1702년 당시 목사 이형상에 의하여 제주의 사찰들이 완전히 폐사되었고-이로부터 200년간 제주에는 불교와 사찰이 존재하지 아니하였다. 1908년 10월 비구니 안봉려관스님이 현재의 위치에 옛 관음사(고려?대)를 복원함으로써 민간에 스며들어 전해오는 제주불교를 다시 재건하게 되었다.
  현재 관음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본사로서,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제주지역에서 대표하여 신앙적 종교적으로는 종파를 초월하여 제주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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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와 4·3유적

- 1948년 4월 3일(당시는 대한민국정부 수립이전 미군정시대임)을 기하여 제주도 전역에 소요와 혼란이 발생하였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 중산간에 위치한 마을들이 없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사태의 진전을 통칭 4·3사건이라고 한다.
- 당시에 선량한 제주도민 대다수는 낮에는 토벌대에 몰리고 밤에는 입산무장대에 몰려서, 뺏기고 맞고 도망다니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무수한 사연들이 속출했었다.
- 사태진전과 진압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반국가 사범으로 취급되어 무참하고 잔인하게 재판 없이 현장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 관음사의 위치가 전략상 요충지였는지, 토벌대와 입산무장대가 관음사 지역을 중심으로 상호간에 첨예하게 대치하였고 이러한 과정에 관음사는 안타깝게도 모든 건물과 시설이 전소되었다.
- 관음사 도량을 중심으로 사방 주변 일대에 크고 작은 경계참호와 부대 숙영시설을 설치 하였는 바, 그 유적들이 보존되어 4·3사태 진전시 제주의 참극이자 민족의 비극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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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이 문은 일주문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깨우치신 인생과 우주에 대한 진리 통달이 일심(一心)의 도리를 깨달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의미와 이 세상 천지만물 모든 법이 한 마음의 작용으로부터 전개되는 것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의미가 담겨 있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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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전통문화관광지 조성을 위한 한라산 관음사 성역화 불사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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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四天王門)

  이 문은 사천왕문이라고 한다.
  큰 깨달음을 성취하여 부처님의 지위에 이르게 되면 동서남북 하늘을 주재하는 천신들도 부처님을 받들어 공양하면서 부처님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을 사천왕이 옹호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부처님께 경배 하려면 천왕이 지키는 관문을 통과 하여야 된다는 뜻에서 이곳에 사천왕문을 세운 것이다.
  현재의 사천왕문은 1948년 4·3사태 관계로 불타버린 것을 1973년 이재은 님의 화주로 김해정님이 시주하여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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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국(4·3연구소) 상임이사가 유적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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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유적이 산재한 관음사 뒷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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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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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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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쌓인 4·3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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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사 4·3 유적을 둘러본 후, 스케쥴 변경으로 인해 시간도 여유롭고 관음사 뒷 봉우리를 오르기로 하였다. 오승국 4·3연구소 상임이사님의 설명이 관음사에서 아미산(? 또는 아미오름)으로 부른다고 하여, 자료를 찾아 봤지만, 서적과 인터넷 상에서 공신력 있을만한 자료를 찾지 못하였다.
  오름(oreum.kr)에서는 우선적으로 한라산 관음사코스로 분류하였다. 차후 관음사 뒷 봉우리가 오름인지 확인하여 추가 게재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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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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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목조관음보살좌상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6호
소재지 : 제주시 아라1동(관음사 경내)

  17세기 후반 목조로 제작된 좌불상으로서 관음사에 소장되어 있다. 불상의 복장유물을 보면 1698년 불상이 조성되어 전라남도 영암군 성도암에서 개금(改金)한 후, 전라남도 해남군 소재의 대흥사 남암에 봉안되었다가 비구니 안봉려관 스님에 의해 1925년 대흥사의 말사인 관음사 중창을 위하여 이운(移運)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상의 제작 수법은 17세기 후반기의 양식적 특성을 보여준다. 단아한 형태, 부드러운 양감, 유연한 선묘 등은 당대를 대표하는 불상으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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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를 뒤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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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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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뒤에 가지런히 놓여진 기왓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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